<목차>
사실주의
(3) 작가
사실주의 (프랑스)
(1) 배경
1) 시대적 배경
산업혁명으로 사회는 도시화되고 사회구조는 빈부의 격차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사회적 갈등이 시작됐고 사회주의 계급의식 및 노동자들의 권한과 착취에 대한 문제의식이 다양한 예술에 반영되기 시작했다.
또한 실증주의 영향으로 감각경험과 실증적 검증에 기반을 둔 것 만이 확실한 지식이라고 보는 의식이 확산되어 시각적 사실주의를 중시하게 됐다.
2) 미술적 배경
신고전주의의 시대착오와 낭만주의의 도피주의는 현실적인 사실주의에 반발을 가져왔다. 사실주의 이전의 19세기 화가들은 주제를 이상화하거나 극적으로 다룸으로써 사실에 어느 정도 수정을 가했다. 그러나 19세기 사실주의 화가들은 시각적으로 인지된 것들만 수정하지 않고 정확하게 모방하고자 했다.
화가들은 개개인이 체험할 수 있는 그 당시에 일어난 일만을 그리는 것으로 주제를 국한시켰다. 즉 자신들이 보거나 만질 수 있는 것만을 진실한 것으로 간주했다. 따라서 고대의 신이나 여신들, 영웅들 대신 농부나 도시의 노동자 계층을 다루게 되었다. 사실주의는 색채에서부터 주제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절제했다.
(2) 특징
① 리얼리즘과 아방가르드, 사회현실을 직시하며 현실의 객관적 사실 전달을 중요한 목적으로 두고 이상적 표현과 문학적 상상 등 서정성을 배제하며 시각적 경험의 재현인 현실의 자연적인 묘사를 통해 미술가와 미술의 역할 변화를 추구했다.
② 도미에의 사회 풍자나 밀레의 농민 묘사, 쿠르베의 공상을 배제한 리얼리즘 등 아카데미 역사나 신화를 버리고 일상적 현실의 평범한 소재를 사용하며 소외 계층의 삶을 옹호 하는 주제를 선택했다.
③ 외형의 단순한 모방 재현이 아닌 인간과 사회 현실을 직시하고 작가의 시각에서 바라본 현실의 생생한 전달을 그 기능으로 인식했다.
④ 이후 독일의 멘첼, 벨기에의 무니에, 러시아의 레핀 등이 사실주의 회화를 낳았으며, 1920년 독일 중심의 '신즉물주의'에서도 그 영향을 찾아볼 수 있다..
⑤ 하지만 전통적 미술의 가치를 거부하고 현실을 직접 제시하며 새로운 미술의 방향을 제시하였으나, 미술이 가지는 정서적이고 정신적 가치를 도외시하는 한계를 드러냈다.
(3) 작가
[ 쿠르베 (Gustave Courbet, 1819~77) ]
실증적이고 현실적인 소재의 활용과 현실의 객관적이고 생생한 전달이라는 작가적 신념을 밝히며 현대 사실주의 양식의 토대를 이루었다. 실용주의를 신봉한 그는 역사나 시적인 주제들을 다루는 보수적인 취향에 반대하여 "회화란 근본적으로 구체적인 예술이며 실제 하거나 존재하는 사물에 적용되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천사를 그려보라는 주문을 받자 "나는 천사를 본 적이 없다. 나에게 천사를 보여준다면 그려 보겠다."라고 대답했다. 그의 신조는 "망막에 비치지 않는 것은 그리지 말라."였다.
쿠르베는 《오르낭의 매장》같이 소재를 가까운 곳에서 찾았다. 그의 고향 마을에서 있었던 친척 할아버지의 장례식을 그린 것으로 가로가 거의 7m, 세로가 3m가 넘는 대작인 이 그림에는 총 46명이 등장하는데 실제 사람의 크기 정도의 인물들이다. 실제 시골 장례식 풍경을 고전적 역사화의 형식으로 묘사하며 이상적인 주제와 묘사를 거부하겠다는 이념을 드러냈다. 깊이의 환영을 제한하는 신고전주의적인 방식을 재해석하고 낭만주의자들의 질감을 확장시켜 적용하며 회화 그 자체가 하나의 현실임을 나타내고자 했다. 이전에는 장려풍의 역사화에나 알맞은 이토록 큰 화폭 위에 평범한 농부들이 그려진 적이 없었다. 비평가들은 이 그림이 절망적일 정도로 비천하다고 악평했다.
쿠르베는 자신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작품 《화가의 아뜰리에(화실의 내부)》가 심사위원들에 의해 전시를 거부당하자 개인 전람회장(원래는 창고였다)을 만들고 '사실주의 전시관'이라 이름 붙였는데, 사상 유례없는 단독 전시였다. 쿠르베를 억압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노동자 계급의 이익을 소리 높여 옹호했으며 나폴레옹 동상을 부수었다는 혐의로 6개월 동안 감옥에 들어가는 고초를 겪기도 했다. 쿠르베는 전통을 중시하는 미술의 과장된 표현 방식을 싫어했다. 그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일상의 일에 몰두해 있는 하층 계급의 사람들은 보들레르가 말한 '근대의 영웅주의'를 잘 표현해 주고 있다. 자신의 작품에 영향을 끼친 일반시민과 지식인의 양 측면을 묘사하며 예술가의 역할을 현실과 예술을 연결하는 중계자로 표현했다.
노인과 소년의 노동 장면을 객관적 시각으로 묘사하며 비애감이나 감상의 측면은 배제했다. 가난한 사람들이 겪는 고된 노동을 표현하며 삶과 정서, 자본주의의 탐욕 등을 간접적으로 드러낸 사실주의 작품이다.
[ 도미에( Honoré Daumier, 1808-1879) ]
도미에는 귀족과 정치가들의 으스대는 모습을 그로테스크하게 풍자한 캐리커처를 주로 그렸다. 황제 루이 필립은 "민중에게서 쥐어짠 금 보따리를 집어삼키는 왕"을 묘사한 만화를 보고 도미에를 감옥에 가두기도 했다. 〈라 카리카티르〉나 〈르 샤리바라〉와 같은 신문이나 잡지에 시사만화를 기고한 고발적 주제의 정치풍자 만화가이자 화가, 조각가이다.
민중의 고통을 직설적으로 표현한 비판적 현실 제시로 객관적 사실의 전달보다 현실을 비트는 날카로운 풍자의 태도 중시했다. 주제 부각을 위해 간결한 선이나 독특한 명암 등의 활용과 함께 인물의 날카로운 성격묘사나 과장, 왜곡 등의 삽화 기법과 석판화를 활용했다.
도미에는 파리의 세세한 일상에 관심을 기울였고, 따라서 그의 풍자는 사실주의적 관찰에 뿌리를 내리고 있지만 그를 단순히 사실주의자로만 볼 수 없다. 예컨대 돈키호테에 대한 그의 해석들처럼 세르반테스와 몰리에르에서 끌어내온 테마를 다루는 그림들을 보면 단순히 문학 주제를 구사해서만이 아니라 극적인 효과를 위해 명암 대비를 구사했다는 점에서도 그는 낭만주의자로 분리되곤 한다.
《삼등 열차》에서 도미에는 꽉 끼여 있는 노동자 계층의 여행객들을 현실감 있게 묘사하고 있다. 무표정한 얼굴의 묘사와 명암의 대조 등을 통해 도시의 현실과 인간 소의 등을 뚜렷한 드로잉적 선묘로 표현하며 현대의 교통수단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무관심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장면을 담은 최초의 그림이다.
《트랑스노냉 거리》는 학살 당시의 잔혹하고 무차별적이었던 폭력의 피해를 고스란히 옮겨놓았다. 이 작품은 거리와 카페 등 파리 시내에 전파되었고 본격적으로 왕정에 맞서 풍자화가로 활동하게 되었다. 민간 학살이라는 실제의 사건을 소재로 폭력의 잔인함과 사회 부조리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세탁부》는 센강에 있는 세탁선에서 빨래를 하고 해질녘에 집으로 돌아오는 모녀의 모습을 담은 작품이다. 어머니 양팔에 각각 매달린 빨래 더미와 어린아이, 황혼 빛을 받아 빛나는 세느강가 구식 아파트벽을 배경으로 빨래 방망이를 들고 키에 비해 높은 계단을 힘차게 오르는 아이의 발걸음과 이를 든든히 바라봐주는 어머니 모습에서 작가의 따뜻하고 예리한 시선이 느껴진다. 도미에는 평범하고 이름 없는 사람들의 생애 속에 있는 사소하지만 아름다운, 순간적으로 나타났다 금세 사라져 버리는 소중한 순간을 주로 표현했다.
[출처 : 클릭,서양미술사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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