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서양미술

[미술사] 19세기 인상주의 미술 사조 알아보기

츄츄네 2024. 4. 30.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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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배경

(2) 특징

(3) 작가

 

 

인상주의

(1) 배경

 

①시대적 배경

 

인상주의는 19세기 후반의 25년 간만 융성했던 문화사다. 현대 시민사회의 형성과 광학의 발달, 이 시기에는 무엇보다 보불전쟁과 드레퓌스 사건이 일어났으며 1895년에는 뤼미에르 형제가 영화를 발명했다. 거기에 사진의 발명으로 회화는 사실적 재현이라는 문제를 사진에 양보하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였다. 

또한 당시 철도의 발전으로 마차가 없어도 먼 곳을 여행할 수 있게 되면서 아틀리에에서 작업의 모든 것을 완성하거나, 야외 활동이라면 기껏해야 스케치 정도에 머물렀던 화가들은 먼 야외에 나가 스케치부터 채색까지 전 과정을 완성할 수 있었다.  당시 튜브 물감의 개발로 화가들은 시간과 장소적 제약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②미술적 배경

 

자포니즘영향,  사진기의 발달로 인한 미술의 초상화적 기능 쇠퇴, 고전주의 역사화에 대한 반발이 있다. 19세기 중반부터 일부 화가들은 아카데미적 미술교육에 염증을 느끼고 화실을 나와 자연을 묘사하기 시작했다. 19세기 이전의 회화는 정확한 원근법과 인체의 이상적 비례 그리고 제한된 주제로 표현된 아카데미즘이 중심이었다. 19세기 들어 사진의 발명과 함께 사실주의가 확산되면서 쿠르베를 비롯한 화가들은 눈에 보이는 현상을 그대로 화폭에 담으려 했지만 인상파 화가들은 그것 또한 사진가와 다를 바 없는 기계적 작업이라 생각했다. 인상파화가들은 시간에 따라 변하는 빛의 방향과 색을 빠르게 묘사했으며, 눈에 보이지 않는 셰도우 조차도 세밀하게 표현하려던 기존의 화법을 포기하고 어둡게 처리하였다.

 

 

③ 인상주의 사조 명칭

 

1873년 살롱이 피사로, 모네, 르누아르, 세잔느, 시슬리의 그림을 거부하자, 이를 계기로 이듬해인 1874년 4월, 사진작가 나다르 Nadar의 작업장에서 자신들의 앙팡당 전시회를 개최하였는데, 이를 자칭 '무명화가 및 조각가 판화가 예술가 협회전 Societe anonyme des artistes peintres, sculpteurs, graveurs'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출품자 중 모네의 <인상, 해돋이를 인용하여, 신문기자 르로이 Louis Leroy가 《르 샤리바리 Le Charivari》 지에서 이들 모두를 인상주의자'라고 조소적인 의미로 명명한 것이 후에 그들 자신에게도 그대로 받아들여져 일반화되기에 이르렀다.

 

 

 

(2) 특징

 

① 아카데미 미술의 거부

 

 기성세대의 도식화된 화법과 고상한 주제를 거부하고 귀족의 타락한 일상을 표현하는가하면, 천박한 여인의 나신을 화폭에 그대로 담아낸다. 한편 사진을 밑그림으로 많이 이용했던 드가는 사진의 스냅 샷 같은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생생하게 표현하며 '회화는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는 공통된 의식을 가지고 현실을 담아냈다. 모네는  오귀스트 르느와르 (Auguste Renoir) 등 그의 동료들과 함께 자연으로 나아가 자연을 관찰하고 눈에 보이는 세계를 현실적인 방법으로 화폭에 담아내고자 했다.  화실에서 그려졌던 관념적 이미지와는 다른, 빛에 의해 수시로 변하는 현실적 풍경을 표현하기 위해 그들은 빛의 방향과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사물의 형태에 주목하고 빠른 손놀림으로 빛의 변화를 포착했다. 


 빛의 변화에 대한 관심과 화사하고 다채로운 붓질 표현

 

 인상주의 화가들은 수면에 비치는 현란한 빛의 움직임을 관찰했는데, 수천 개의 빛 얼룩이 뚜렷한 윤곽 없이 유동적으로 살아 움직이는 세계를 만들어냈다. 이로써 전원 풍경은 형태가 불분명해지고 윤곽이 흐려졌으며, 빛은 계절의 변화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미세하게 달라져 다양하게 중첩되는 무수한 붓 터치로 생동감 있고 요동치는 화면을 만들어냈다. 비례, 균제, 규칙성 등의 기하학적 법칙들을 거부하고 자연을 모방하는 참된 방식은 선이나 형태가 아닌 색 자체에 충실하게 지각하고 묘사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로 인해완전한 형태와 선명한 데생을 포기하고 순간을 포착하며 원근법과 입체감의 효과에 따른 여러 착시 현상들을 표현하는 작품이 아니라 그림의 표면 위에 퍼져 있는 하나의 '실제'가 되었다. 

 

 

 순간의 색채를 표현

 

 음영은 회색이나 검정색이 아니라 대상의 보색으로 칠해지고, 윤곽선을 배제함에 따라 대상의 입체성이 상실되며, 따라서 인상주의 회화는 빛과 대기의 회화, 지시색과 반사색의 유희로 되었다. 풍경화에서 빛과 대기를 통해 표현된 기후와 계절 등의 효과에 대한 민감성은 콘스터블 John Constable(1776~1837)과 터너 William Turner(1775~1851)에 의한 풍경화 양식에서 영향받은 바가 컸다.
 그리고 전통적인 다갈색 대신 흰색이 초벌칠된 캔버스 위에 혼합되지 않은 그림물감을 사용하는 필법, 검은색의 배제 등은 직접 관찰에 기인한 것이었다.  모네는 인상주의 개념에 일관되게 충실했던 거의 유일한 화가인데 점차 빛과 대기에 몰두, 팔레트 위에서 물감을 섞지 않는 대신 색채를 분할하여 공간을 해체하는 등 인상주의 기법의 한 전형을 개척했다. 
 

 다양한 주제 표현

 

인상주의자들의 주제는 매우 다양했는데, 마네는 18세기 전통적 주제들을 사실적으로 변형했고, 르누아르는 귀여운 여인이나 아낙들, 아름다운 풍경들을, 드가는 경마, 무희, 세탁부, 재봉사들을, 시슬리, 피사로, 모네는 주로 풍경에 관심을 보였다. 그들은 형태 구성을 피하고, 마치 카메라가 우연히 한 장면을 찍은 것처럼 즉각적인 시각적 인상의 효과를 전달하려고 했다. 그렇지만 우연성의 인상은 의도적으로 계획된 것으로, 예컨대 드가는 현장에서의 스케치를 자신의 작업실에 와서야 비로소 그림으로 구성했다. 

 

 

(3) 작가

 

작가 마네 모네 르누아르 드가
주제 -옛 거장들 그림을 현대적으로 재해석
-현대 평면적 표현 시작
-풍경화
-광선변화의 연작
-관능적 살결의 누드
-카페, 꽃 그림 등
-순간동작의 인물 초상, 무희, 경마 등
-후기에 목욕하는 누드
색채 -밝은 색채와 검은색 액센트 
-초기: 엄숙/ 후기:원색풍
-찬란한 색조
-순수 원색의 배열
-그림자는 보색으로 나란히 배열
-붉은 색조와 푸른색 사용 -부드러운 색조의 파스텔
스타일 -단순화된 형태
-검은 윤곽선
-평면적 색면
-빛과 대기 속으로 형태 소멸
-전형적인 인상주의
-초기: 빠른 화필
-후기: 고전 누
-인물의 독특한 배치
-자유로운 각도
-중간이 빈 불균형 구도

마네


 인상파의 창시자이자 기하학적 평면 표현을 시작으로 근대 회화의 기틀 마련했으며 현대적 삶을 테마로 쿠르베까지 이어 온 마티에르를 버리고 넓고 거친 붓칠과 밝은 원색 명암을 생략하여 평평한 색면을 강조했다. 그림이란 표면 그 자체를 봐야 하는 대상이지 그것을 통해서 다른 무엇을 보게 하지 않겠다는 신념으로 회화의 가치를 부각 시켰고  할스, 고야, 벨라스케스 등 옛 거장의 신화적 작품을 근대적 인물로 대치하거나 새로운 사실주의적 양식으로 재해석했다. 1870년대 이후 외광파로 관심을 돌리며 자연광의 밝음과 눈부심을 포착한 색채를 활용했다.

<풀밭위의 점심식사>. 1862


 〈풀밭위의 점심식사〉는 지오르지오네의 전원의 연주회와 라파엘로가 제작한 파리스의 심판을 근거로 재구성했다.  

 이 그림은 전원을 배경으로 잘 차려입은 두 명의 남성과 함께 있는 누드인 한 여인과 옷을 거의 벗은 또 다른 여인을 묘사한다. 1863년 살롱 심사에서 거부당하자 마네는 다른 두 작품과 함께 이 작품을 1863년 낙선전(Salon des Refusés)에 전시할 기회를 얻었고, 그곳에서 이 그림은 대중적인 혹평과 논란을 일으켰다. 이상화를 거부한 누드 인물과, 생략적 명암으로 근대적 시각에서 재해석한 작가의 자율적 구성양식을 제시했다. 

 

(좌) 티치아노  〈우르비노의 비너스 〉 1538        /    (우) 마네 〈올랭피아〉. 1863



〈올랭피아〉는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를 재해석하여 도발적 태도와 정면을 응시하는 사실주의적 양식의 누드화로  전통적 누드화에 내게된 감상적 이상을 부정하며 이제까지의 사회적 통념이나 미의 관념을 거부했다. 


모네

  뛰어난 데생은 모네가 작품에서 일시적인 순간을 포착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다. 모네는 순간적인 빛의 효과를 끄집어내고 수풀의 섬세한 떨림과 태양 아래 자연의 유동적인 움직임을 포착하기 위해서는 화실 내에서의 작업만으로 부족했기 때문에 야외에서 소재를 놓고 작업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주제와 관련해서도 모네의 작품은 상당히 그 폭이 넓어서 초상화,실내 장면, 바닷가, 전원 풍경, 도시, 꽃 핀 정원까지 망라한다. 하늘과 물을 좋아했던 모네는 지면에 빛이 반짝이게 만들고, 빛이 투과한 대기에는 가벼운 막을 씌운 듯한 효과를 준다. 또한, 형태를 초월한 순간적 감각, 이미지의 기록과 작은 원색 물감의 병치를 통해 시각적 혼합이나 구불거리는 필치 등 입체감이 무산된 생채 중심의 평면성 강조 했다.

 

 

〈해돋이,인상> 1872


〈해돋이 인상〉은 인상주의라는 명칭의 시작을 알리는 기념적 작품으로 수면 위의 풍경을 짧고 단속적인 붓질에 의해 표현했으며 인상의 색조와 순수 원색의 배열이 시각적 혼합을 유도하며 시각적 경험 현실을 직관적으로 포착했다. 

 

르누아르

 


 르누아르는 인물의 살결과 얼굴, 옷, 그리고 수풀 위로 드리워진 현란한 빛의 효과를 표현하며 서정적이고 육감적인 유쾌한 그림을 선보이며 존재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창조하고자 했다. 
 1892년 무렵부터 여인의 나체에서 발산되는 육감적인 아름다움을 예찬했다.  휴양지를 배경으로 외광아래의 인물과 그들의 일상모습 등을 낙천적으로 표현했고 부드럽고 풍부한 색채와 질감 등을 주제에 따라 다양하게 구사하며 관능적인 누드 인물과 삶의 기쁨을 표현하며  외광에 의한 작고 짧게 끊어지는 필치의 분할 시도 및 고전주의의 형과 색을 사용하며 누드화를 제작했다.

 

〈몰랑 드 라 갈레트의 춤〉. 1876



〈몰랑 드 라 갈레트의 춤〉은 빛과 그늘의 변화와 놀이에 열중하는 군상의 순간적인 모습을 포착하며 인간적인 휴머니즘과 풍부한 색채, 질감 등으로 낙천적 일상을 묘사했다.

 

수련

 

 수련은 모네가가 그린 약 250점에 달하는 유화 연작이다. 프랑스 지베르니의 모네 생가에 있는 수련 정원을 그린 작품으로, 1890년대부터 1920년대까지 30여 년간에 달하는 오랜 세월 동안 집중해서 그린 소재였다. 작품 중 대다수는 모네가 백내장을 앓고 있던 상태에서 그려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작에 속한 모든 그림의 소재가 정원의 수련으로 공통되었다는 점에서, 연작 자체를 가리킬 땐 '수련'이란 제목으로 부른다. 그러나 그림 한점 한점마다의 제목은 연작의 명칭 그대로 '수련'인 것도 있으나 '수련이 있는 연못', '수련 연못', '수련과 일본풍 다리' 등처럼 다른 제목이 붙여진 것도 많다.

 

 

드가


 드가는 파리의 근대적 생활의 사실주의적 접근이나 순간적 동작을 강조하는 경마, 무희, 서커스 등을 소재로 고전주의적 소묘와 인상주의적 이념을 결합해 견고한 윤곽과 정확한 소묘를 중시하며 3차원의 공간감 및 비규범적 구도를 복합적으로 사용했다. 
 일본 목판화의 경사 원근법에 강한 영향을 받았으며, 카메라의 순간 포착을 이용한 임의적, 비대칭적, 역동적 화면 구성을 통해 때때로 사회 주변부의 고독과 소외를 표현하기도 했다.

 1870년대 중반 발레의 장면에서 소묘와 밝은 색, 자유롭고 대담한 필치가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는 독특한 스타일의 파스텔화를 완성했고 1880년대와 1890년대 점포 안의 상인이나 세탁부, 욕실 등의 사소한 일상에 몰두하는 소재를 적극 활용하며 사실주의 실험을 발전시켰다. 보는 각도를 바꾸어 가면서 정확한 데생과 풍부한 색감을 표현하였다. 무희를 모델로 한 작품이 많아 '무용의 화가'로 불린다. 

 

<발레 수업> 1871 ~1874. 유화

 

<발레 수업>은 발레 마스터 Jules Perrot 밑에서 수업을 마친 무용수 들을 표현했다. 

 

 

 

 

[출처 : 핵심서양미술사(제라르 드니조), 점심먹고 미술사(신현국), 월간미술미술사전 발췌]